목차
- 영화 줄거리
- 제목 의미
- 구조와 연출
- 전체적인 감상 리뷰
<본즈 앤 올> 줄거리
'매런'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지내왔는데 어느 날 아버지마저 자신을 떠나게 되고 이제 혼자 남은 매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를 찾아서 떠나게 된다. 매런은 사람을 보면 뜯어먹고 싶어서 주체를 하기 힘든 그야말로 본능적인 식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엄마를 떠나서 떠난 그 방랑의 과정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하는 '리'를 만나게 된다. 리 또한 매러처럼 본능적으로 식인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 둘을 그렇게 여정을 함께 다니게 된다. 80년대 미국 중서부의 배경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로 경제적으로 호황기이지만, 어디나 그렇듯 여전히 낙후된 곳도 있었으며 활기와 불안이 공존하는 그런 시대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피상적으로는 식인을 하는 존재들로 표현이 됐지만 그 알맹이를 보면 어떤 존재일까? 어딜 가든 떳떳할 수 없고 불안하며 찜찜하고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불완전한 상태로 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소외되었고 방랑자이기도 하다.
제목 의미
영화 중 모닥불에서 '풀 본(Full Bone)'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와, 마지막 장면에서 리가 매런에게 하는 말까지 두 경우 모두 뼈까지 먹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에선 좀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 완성되는 그런 장면인 동시에 그렇게 억누르고 컨트롤하며 살아야 하는 본능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진정으로 함께하게 되는 그들 나름은 '본즈 앤 올(Bones and All)', '풀 본(Full Bone)' 을 실현시킨 것으로 제목의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의 구조
도덕적인 관념과 상관없이 결국에는 누구나 깊은 곳에는 자신도 주체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과 충동이 숨겨져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면서까지 내 충동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식인'이라는 것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치이자 소재이기도 하다. 엄마를 찾으러 가며 미국의 중서부 다양한 주들을 지나가는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주들을 지날 때마다 화면 가득히 주 이름을 알파벳 두 글자로 줄인 약자를 띄운다. 그게 마치 뼈처럼 보인다. 화면 가득히 투명하게 보이는 희끄무리한 글자 폰트가 이 영화의 제목이나 소재와 맞물리며 엑스레이로 보이는 하얀 뼈 같이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위해 떠난 로드무비의 뼈대를 가지고 외로움과 사랑이라는 살점을 붙이고 죽음과 불안과 충동이라는 피를 흐르게 하여 만든 하나의 피조물 같은 영화이다.
연출
영화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젊은 촬영감독과 함께했다. 영화 내내 색온도는 낮게 전체적으로 누런 화면이 깔려있다. 그 색 온도와 색감을 화면에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따뜻한 일관성을 불어넣는다. 아무리 식인 영화라고 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흥건한 영화여도 그 따스한 정서를 그 색온도와 색감으로 극 전체에 은은하게 영리하고 세련되게 깔아 두었다. 심지어 공포를 유발할 장면에서도 색온도는 계속 유지될 때도 있다. 80년대 배경에 안성맞춤인 30mm 필름을 사용해서 감칠맛을 주었다. 편집점도 재밌다. 등장인물이 걸어가는 걸 다 보여줄 때도 있지만, 시작점에서 문까지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중간을 편집해 바로 문 앞에 가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예를 들어,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생각이 났고 데이빗린치도 생각났다.
전체적인 감상 리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넓은 의미를 내뿜는 사랑에 관심이 항상 많은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단순히 안아주고 키스하고 땀 닥아주고 피 닦아주는 것뿐만 아니라고 말한다. 뒤틀리고 불안정하며 역겹고 혐오스럽고 소름 끼치게 공포스럽기도 한 것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게 특정화되기 힘든 모습을 가지고 있고, 항상 모습이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많은 인물들이 서로를 남겨두고 버리고 떠나거나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것이 무조건 사랑과 정반대의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영화는 내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렁거리는 그런 본능과 마주할 때 어떻게 그 본능과 마주하고 눈 마주치는가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사랑의 미스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해 낼 수 있는 감독이라고 정말 느끼고 '서스페리아'때도 아무리 피가 흥건하고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도 결국에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서 식인을 다른 인간의 살덩이를 먹는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자기 자신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욕망이나 충동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그런 나 자신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은 어떤 존재인가? 그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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